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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계획도 없고 목적도 없이, 그냥 끌리는 대로 움직이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르는 우연들 속에, 왠지 모를 작은 연결이나 감정의 흔적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무 계획 없이 ‘느낌’을 따라 움직이기로 했다.
나도 모르게 멈춘 골목 – ‘익숙함’이 아닌 ‘끌림’의 방향
오전 10시, 발걸음이 닿은 건 평소 절대 가지 않던 옆 골목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따뜻해 보였고, 그 느낌을 따라 걷다 보니 골목 끝의 오래된 포토 스튜디오가 눈에 들어왔다. 낡은 간판, 세월이 느껴지는 창문. 호기심에 안을 들여다봤지만 문은 닫혀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순간 내 머릿속엔 초등학교 때 찍었던 증명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똑같이 어정쩡한 배경, 강제로 웃던 얼굴. 단순히 길을 잘못 든 줄 알았던 이 장소가, 어딘가 익숙한 과거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장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그 바로 앞 의자에 어떤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내가 그곳에 서 있는 걸 보더니 말했다. “저기 안은 내 아들 가게였는데 요즘은 잘 안 열어요.”
이 말 한마디가 갑자기 이 공간을 낯설지 않게 만들었다. 우연한 골목, 우연한 대화.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조용히 마음을 흔들었다.
무계획 산책 중 발견한 포스트잇 하나
점심 후, 아무 생각 없이 산책을 나갔다. 스마트폰도 두고, 음악도 없이. 평소처럼 걷는 대신, 마음 가는 대로 골목을 돌고 벤치에 앉았다. 그러다 어떤 작은 공공 게시판에 붙어 있던 노란 포스트잇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멈춘 당신, 잘하고 있어요.”
누가 붙였는지도 모르고, 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한 줄이 뇌리에 깊게 박혔다. 전혀 의미 없는 위치, 전혀 관계없는 문장. 그럼에도 나는 괜히 마음이 찡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진짜 우연은, 내가 준비하지 않아도 와닿는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미리 준비한 문장보다 더 진하게 남는다.
그 포스트잇을 보고 나서 내 마음은 조금 정리되었다. 계획 없는 하루가 ‘헛된 날’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위로가 흘러들 수 있는 여백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줬다. 목적 없이 떠도는 나의 움직임이, 어쩌면 누군가의 따뜻한 의도를 우연히 마주치게 한 건 아닐까?
지나가는 소리와 닿는 감정 – 의미는 없지만 파장은 남는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집 근처 카페에 들렀다. 특별히 커피가 마시고 싶다기보다, 그냥 앉아서 쉬고 싶었다. 사람들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한 문장이 귀에 들어왔다. “그냥 하고 싶어서 했던 일이, 제일 오래 남더라.”
이건 분명 나를 향한 말은 아니었다. 옆 테이블 대화였고, 그들의 맥락은 나는 모른다. 그런데도 이 말이 이상하게 꽂혔다. 오늘 나의 하루와 묘하게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맥락 없이 들려온 한 문장. 마치 누군가 내 마음을 알고 던진 말 같았다.
어쩌면 이게 진짜 ‘우연의 무게’일지도 모른다.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사라질 말들, 행동들, 공간들. 하지만 감정이 반응하면 그건 내 것이 된다. 오늘은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스쳐 가는 것들에서 의미를 발견한 건 내 감정이 열려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직감대로 움직인 하루는 수많은 우연으로 가득했다. 특별히 무언가를 기대한 것도, 찾으려 한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가득 찼다. 의미를 찾지 않아도, 의미는 흘러들었다. 어쩌면 진짜 울림은, 계획 없이 스며드는 조용한 우연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