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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
우리는 대부분 ‘해야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간다. 마감 일정, 회의, 정리, 정답 같은 단어들이 나의 하루를 점령한 지 오래다. 그래서 하루쯤은 반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만 고르기. 오직 직감과 끌림에 따라 일정을 짜고,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면 어떤 하루가 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하루를 기록해보았습니다.

아침 – ‘해야 한다’ 대신 ‘하고 싶다’로 시작한 하루
알람 없이 눈을 뜬 아침. 가장 먼저 한 일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지금, 뭐가 하고 싶지?”
늘 하던 스마트폰 확인도, 뉴스 탐색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른 건 ‘차분히 차를 마시며 멍때리기’. 평소였다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을 그 행위를 오늘은 의도적으로 선택했다.
따뜻한 허브티를 준비하고, 창가에 앉아 빛을 느꼈다. 신기하게도 그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이 맑아졌다. 차 한 잔으로 시작한 하루는 예측 불가능했지만 단단했다. ‘해야 할 일’을 배제하자, 오히려 내가 지금 이 순간 가장 필요한 걸 선택하고 있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 후로도 ‘운동할까 말까’ 고민 대신 “하고 싶은가?”를 기준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스트레칭 정도만 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죄책감은 없었다. 욕심이 아니라 감각이 기준이 된 시간, 그것만으로도 아침은 충분히 충만했다.
낮 – 내가 고른 ‘지금 하고 싶은 일’의 조합들
점심 이후부터는 조금 더 활동적인 시간이 시작됐다. 오늘은 ‘생산적인 일’의 정의마저도 직감에 맡겨보기로 했다.
노트북을 켰지만 할 일을 나열하진 않았다. 대신, 끌리는 폴더를 열고 예전 글을 꺼내봤다. 갑자기 글을 고치고 싶은 욕구가 생겨 손이 움직였다.
재미있게도 이건 ‘해야 할 일’이 아니었지만, 아주 깊은 집중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또 한참을 작업하다보니 외출이 끌렸다. 별 목적 없는 산책. 그러다 무심코 들른 책방에서 시집 한 권을 골랐다. 내가 오늘 한 선택 중 대부분은 타인에겐 비생산적일지 몰라도, 나에겐 분명 의미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고르면 무조건 게으를 거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의무 없이도 에너지가 생겼고, 그것이 나를 부드럽게 이끌었다.
‘하고 싶은 일’은 때론 내가 진짜 원하는 감정 상태로 가는 빠른 길이라는 걸, 이 하루가 보여주고 있었다.
밤 – 해야 할 일을 안 했는데 이상하게 후회가 없다
해가 지고, 하루가 끝나갈 무렵. 체크리스트를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거의 ‘의무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 업무 정리도 안 했고, 청소도 미뤘고, 계획표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후회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 마음은 편안했다. 나 자신에게 충실했다는 만족감이 있었고, 무엇보다 ‘내 하루에 내가 있었다’는 실감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하고 싶은 일만 고른 하루는 세상이 요구하는 성공과는 멀었지만, 나의 욕구와 감정에 가까운 하루였다.
물론 앞으로도 매일 이렇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 감각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조율해볼 수 있다. 오늘의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그것을 묻는 연습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만 골라 살아본 하루는 예상보다 나를 더 깊이 만나게 했다. 효율, 성과, 완벽함 대신, 감정과 직감을 따라간 시간. 그 하루는 게으름이 아니라 정직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때론 “지금 뭐 하고 싶어?”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삶의 리듬은 달라진다. 오늘 하루, 나의 우선순위는 나였다.